함께 나누는 이야기
신의 은총과 공동선의 실현 본문
칼뱅은 교회의 자발적 시민사회 참여와 신자와 비신자와 참여를 통해 어떻게 하나님 형상을 구현할 수 있을까에 대한 깊은 고민을 가지고 있었다. 칼뱅의 특별은총과 일반은총이 공동선에 어떠한 관점을 가졌는지에 대한 대립된 두 그룹이 존재한다.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를 중심으로 한 신칼뱅주의는 일반은총 교리가 칼뱅에게 명백히 발견된다고 주장하며 일반은총 교리와 칼뱅을 가까이 두려고 한다. 이렇게 신칼뱅주의를 따르는 그룹은 공동선 사상에서 일반은총 교리를 독립적인 신학의 범주로 다룬다. 그러나 다른 그룹은 칼뱅과 일반은총과 연관성이 약하다고 보며 일반은총과 칼뱅을 멀리 떨어뜨려 칼뱅의 공동선 사상에서 일반은총의 중요성과 역할은 축소시키려 한다. 그렇다면 칼뱅의 공동선과 일반은총의 관계에서 어느 한편만을 선택해야 하는가? 아니다. 칼뱅의 저서를 통해 나타난 일반은총에 관한 진술을 들여다보고 인류 공동선(the common good of the humankind)에 대한 칼뱅의 본래 의도를 살펴보면, 칼뱅은 『기독교 강요 』에서 “인간성이 그 진정한 선을 빼앗긴 후에도 주께서는 많은 선물을 인간성에 남겨 두셨다.”고 보았다. 인간은 타락한 후에도 하나님께서 지적 능력을 선물로 인간에게 남겨 두셨다 이. 지적 능력은 인류 공동선을 위한 신학적 인간학적 배경이 된다. 칼뱅은 “인류의 공동 이익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개인들에게 주시는 가장 훌륭한 은혜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라고 진술한다. 이 진술은 지적 기능의 목적이 무엇인지 명백히 말한다. 하나님께서 일반은총인 지적 능력을 모든 사람에게 주신 이유는 공동선을 위해서이다.
칼뱅은 출애굽기 31장의 브살렐과 오홀리압의 예를 들어 총명과 지식은 하나님의 영 곧 성령께서 그들에게 넣어주신 것이라 진술한다. 인류 공동선을 위하여 성령에 의하여 수행되며 이 성령이 신자와 비신자 모두에게 일반은총으로 부어주심을 유추할 수 있다. 칼뱅은 성령의 역사를 일반은총과 특별은총으로 구분했으며, 동일한 성령이 신자 비신자 모두에게 베푸시는 일반은총에 따라 수행된다고 봤다.
하나님의 일을 수행함에 있어서도 경건한 신자뿐만 아니라 경건하지 않은 이교도에게도 하나님의 선물이 주어졌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것을 통해 칼뱅은 신자와 비신자 간의 관계 형성이 중요하며 서로 간에 적절한 관계를 세워야 함을 제안한다. "우리가 자연 과학과 논리학과 수학과 그 밖의 도움을 받는 것이 주님의 뜻이라면, 우리는 이 도움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신자는 교회와 인류의 공동선을 위해서 교회 내의 교제와 협력을 넘어서 교회 밖의 사람들과의 교제와 협력에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하나님께서는 공동선을 위해서 보편적이지만 특별한 선물을 구원 받지 않은 사람 누구에게도 줄 수 있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유추해 볼 수 있다.
칼뱅에 따르면 일반은총으로 자연적 은사를 주셨고 그 자연적 은사는 사람에 따라 질적인 차이를 보인다. 이 자연적 은사의 질적 차이에 따라 정치, 문화, 교육 등 여러 방면에서 혜택의 차이가 나타날 수 밖에 없다. 자연적 은사는 일반 보편성과 탁월성의 변증법적 교차 방식으로 인류의 복지 건설에 이바지한다. 칼뱅은 고대의 법, 기술, 시민, 질서, 철학, 수학, 의학과 같은 학문에 남아 있는 자연적 은사를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자연적 은사는 인간이 비록 부패하고 타락했다 할지라도 사회의 공익을 위해 최대한 사용되어야 하고 모두가 누려야 한다. 자연적 은사는 신적 은혜와 대조되거나 분리되지 않을뿐더러 전적으로 하나님 은혜에 의존한다. 칼뱅의 일반은총 교리를 사회적 공동선에 대한 성찰로 보자면 신자와 비신자 모두에게 주어진 것으로 사회적 공동선에 긍정적 기여를 나타내 보이고 있다. 더불어 일반은총은 사회적 공익을 위해서 쓰이기도 하지만 교회의 영적 공익을 위해서도 얼마든지 사용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