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나누는 이야기
공동선이란 무엇인가? 본문
'공동선 (Common good)'의 정의를 살펴보려 한다. 먼저 사전적 정의는 '모든 사람의 유익이나 이익 (the benefit or interest of all)' 또는 '모두의 선함 (the good of all)'이다. 이 단순해 보이는 개념은 광범위한 함의와 다양한 맥락을 가진다. 공동선을 'common good'이라 표기한다. 공통 혹은 공동이라는 말에는 단순하면서도 자연적이고 평상적이라는 의미가 있다. 그래서 공동선은 "단순하면서도 자연적이고 평상적이면서도 쉽게 접근하여 얻을 수 있는 선"을 의미한다. 모든 인간이 본성에 따라 추구하는 선이라면 그 선은 인류 공통적인 것이며 모두가 함께 추구하면 그 선이 바로 공동선이다. 따라서 공동선은 개인과 집단 모두가 공통으로 바라는 것이며 인간이 인간성 때문에 그 본성에 따라 바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공동선과 비슷한 단어로 공익을 들 수 있다. common good을 공동선이라 번역하기도 하지만 공익이라 번역하기도 한다. 그러나 공익은 'public good'에 가깝다. 'public good'와 'common good'을 구분하여 번역하기가 쉽지 않을 만큼 그 개념이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공동선과 공익은 분명 다르다. 공은 사를 등지고 평분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곧 사적인것에 대하여 전체성을 나타낸다. 반면에 공은 모두 함께, 같이라는 의미를 가지지만 개별성을 중요하게 여긴다. 공(公)은 개인보다 전체를 강조하며 전체가 개인을 조절하는 하향식 구조를 가진다면 공(共)은 구성원 각각의 개별성을 강조하는 상향식 구조를 가진다.
공동선 사상은 서구의 정치철학, 사회경제사상, 신학에서 발견할 수 있으며 오랫동안 논의되고 있다. 먼저 서양 정치철학적 차원에서 나타난 공동선 사상을 살펴보기로 한다. 플라톤은 공동체의 선을 개인의 선보다 우선시했다. 그는 정의로운 정치공동체 내에서 생활하는 경우에만 개인은 가치가 있고 존엄하다고 봤다. 각 개인들이 자신에게 적합한 일에 전념함으로 도시국가에 가장 큰 유익을 끼치고 개개인에게도 혜택이 돌아오게 함으로 공동선을 달성하는 것이 정의이며 이를 부정하는 것이 부정의이다. 도시국가의 구성원 각자가 지혜 용기 절제를 덕성으로 삼아 조화를 이룬 상태를 정의라 할 수 있다. 그에게 공동선이란 전 공동체가 덕성 있는 생활을 하는 것이다. 그에게 정의라는 개념은 초월적이며 영구적인 조화로운 통일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정의는 인간의 현실의 삶과 제도에 온전히 구체화되지 않을 수 있지만 인간은 도덕적 행위에 이러한 온전하고 절대적인 이념을 적용하려는 시도를 멈춰서는 안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에 비해 개인을 더 배려한다. 그 역시 개인을 사회의 공동선을 위한 부분으로 인정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개인의 선한 생활이란 타자와 나누기 위함을 지향한다. 왜냐하면 개인과 공동체적인 삶의 질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개인의 목적 달성에 있어서 공동체의 도움을 강조한다. 그는 인간을 공동체적 일을 달성하려는 정치적 동물로 봤기 때문이다. 정치의 목적은 덕성을 계발하여 공동선을 증진하게 하고 자치에 참여하게 하는 것이다. 자유인은 정치적 객체이면서 주체이기에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서로 다스리고 다스림을 받는 정치적 관계를 가진다. 이러한 정치적 존재가 되기 위해서 정치적 객체가 되는 입장에서 탈피하여 주체적 자유인으로서 공동체에 덕성을 행사하고 선을 이루어야 한다. 곧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의 목적과 사회의 정의는 시민들이 선한 삶을 살며 도시국가의 공익을 성취하는 데 있다. 학문과 예술이 추구하는 목적 역시도 하나의 선이며 정치학에서 다루는 선인 공동이익(common interest)을 최대의 선으로 여겼다. 뿐만 아니라 공동선을 위한 것인가 아닌가가 좋은 법과 나쁜 법의 기준이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이 추구하는 선은 곧 공동이익이라 밝히고 있다 그리고 . 윤리학에서 본성에 의해 나타나는 것이 공동선이라는 정의를 제시했다. 인간과 인간 공동체에서 공동선은 자연적인 것이기에 선을 공유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도 플라톤처럼 사회는 자연적인 것이고 덕성은 삶에 필요한 방식이라 보았다. 플라톤은 개인을 사회에 종속시킨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선한 삶을 살아가는 데에 정의로운 사회보다 인간의 자율과 개인의 덕성에 더 의지했다. 플라톤과 비교하여 아리스토텔레스는 개인을 우선시한다. 공동체는 개인이 인간으로서 목적을 성취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는 의미에서 공동체를 강조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공동체에서 자신이 선하다고 여기는 것을 추구하며, 각 공동체는 선의 토대 위에 설립되었을 뿐만 아니라 특히 정치 공동체는 최고선을 지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