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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뱅의 이중지식론 본문
칼뱅은 자신의 신학 속에서 인식의 문제와 인식의 중요성에 관심을 집중했다. 칼뱅의 신학이 사회문화적으로 영향력을 끼치게 된 신학체계는 이중지식론에 기초한 인식론의 변화이다.
이중지식론은 르네상스 시대의 철학과 신학 전반에 걸쳐 발견되는 인식론 전환의 반영이었다. 스콜라주의는 역사상 가장 무시당한 지성적 운동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스콜라 저술가 중 한 사람인 둔스 스코투스(Duns Scotus)의 이름에서 영어 단어의 바보에 해당하는 'dunce'가 유래되었다. 16세기 초반 스콜라주의 운동을 무시하는 인문주의자들에 의해 스콜라주의는 아무런 결과도 없이 지성을 낭비하는 이들로 간주되었고 '스콜라주의'라는 용어 역시도 고대와 근대 사이의 재미없고 지루한 시기를 경멸적으로 언급할 때 사용한 것이다. 스콜라주의는 1200년에서 1500년 사이에 활발했던 중세의 운동으로 종교적 신앙의 이성적인 정당성화 강조와 신앙의 조직적 설명에 주안점을 두었다. 그러므로 '인문주의'라는 용어와 마찬가지로, '스콜라주의'라는 용어도 특정한 교리를 의미하기보다는 접근 방법이나 방법론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칼뱅의 시대는 "르네상스의 인식론적 위기"라 할 만큼 중세의 이성지배의 지식관과 인식론을 벗어나기 위한 새로운 인식의 실마리를 찾기 위한 전환기였다. 『기독교 강요』는 스콜라주의의 '하나님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벗어나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어떻게 획득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인식론적인 질문의 전환을 꾀한 것이다. 칼뱅은 중세의 신비주의의 전통에서처럼 신앙을 '경험'으로서가 아니라 '지식'으로 여기는 신학적 인식론의 전환을 가져왔다.
칼뱅의 신학은 세계에 관한 지식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상호관계에 대한 강한 확신을 보여준다. 그의 이러한 인식론의 전환은 신앙의 본질을 '지식'이라는 새로운 관점으로 접근하였다. 이러한 전환은 중세 말 신비주의적인 방향으로 가던 지각 있는 신앙인들의 방향을 돌리게 했다. 중세 말부터 종교는 신학과 철학이 분리되는 경향이 나타났다. 철학자들은 인간 지식을 다뤘고 신학자들은 인간 이성에 의존하여 신적 개념을 다뤘다. 이를 거부하는 자들은 신비주의적 경향으로 나아가는 현상이 일어났다. 칼뱅은 이러한 경향을 신중한 성서의 연구로 돌이키게했다.
칼뱅은 성서에게 각별한 위치를 부여했다. 성서를 신앙에 관한 참된 앎의 원천으로 여겼을 뿐만 아니라 성서를 계시의 원천으로 간주했다. 계시는 인간의 사변적 추론이나 철학적 사색으로 인식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조명을 통하여 깨달아지고 확신되는 특별한 지식임을 분명히 하였다. 신학의 근거는 성경과 성령의 밀접한 상관관계로 규정함으로 루터에서 기인한 '오직 성경'이라는 종교개혁의 원리를 "말씀의 신학"이라는 칼뱅의 종교개혁의 패턴을 확립시켰다. 이러한 그의 신학은 귀족인 교양 계급의 여성과 교육의 기회는 없으나 배우기를 갈망하는 여성과 지식인 평신도 등 신앙의 지적인 것들에 목말라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게 되었다.
칼뱅의 『기독교 강요』는 신인식의 문제로 시작한다. 인간이 알 수 있는 것은 신지식과 인간 자신에 관한 지식임을 강조한다. 자아에 대한 참 지식은 인간의 절망과 합당하지 못함을 발견하게 해 주며,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추구해야 할 필요성을 자각하게 해 준다. 그러나 현재의 우리는 심각하게 오염되어 있어 우리의 참모습이 아님에도 우리의 참모습이라 주장하며 우리의 결점을 넘어가려고 하기 때문에 참된 지혜를 얻기 위한 출발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칼뱅은 하나님의 존재를 단순히 아는 지식만으로는 부족하며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가지기 위해서는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태도보다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올바른 태도가 더 중요함을 강조한다.
신지식이 창조주로서의 하나님과 구속주로서의 하나님의 두 면으로 나누어지며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인간을 아는 지식과 연결되어 있다. 즉 하나님에 대해서 알기 위해서는 인간을 알아야 하며 인간에 대하여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칼뱅의 1536년 『기독교 강요』 초판의 제1장의 처음을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인간에 대한 지식"으로 시작한다. 1559년의 최종판에서는 제1권은 "창조주 하나님에 관한 지식", 제2권은 "그리스도 안에 계신 구속자로서의 하나님에 대한 지식"으로 조정된다. 그러나 여전히 제1권의 1장의 표제는 "하나님에 관한 지식과 우리 자신에 관한 지식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러면 이 둘은 어떻게 서로 관련되어 있는가"로 되어 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인간에 대한 지식"은 "창조주 하나님에 관한 지식"과 "그리스도 안에 계신 구속자로서의 하나님에 대한 지식"으로 바뀐 것은 인간에 대한 관심이 후퇴된 것처럼 보인다. 여기서 구속주와 창조주로 구별한 의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창조주의 개념이 영적 구원보다 인간과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더 넓고 보편적인 섭리를 나타내기 위함이다. 1536년 초판에서부터 마지막 1559년판에 이르기까지 이중지식론은 『기독교 강요』에서 칼뱅 신학의 중심 원리라고 하기에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