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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사회적으로 공동선 이해하기

발렌 2021. 12. 24. 08:17

근대에 들어서자 선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나타난다. 마키아벨리(Machiavelli)는 정치생활의 변화와 부패라는 위협에 대비하려면 특정한 정치제도가 필요하다 보았다. 이 제도가 바로 공화정인데 권력이 인민에게 있으며 정치적 안정은 질서가 잘 잡혀 있을 때 달성된다. 시민들의 자유의 보장은 공동선을 우선하여 행동할 때 자유가 보장된다고 봤다. 그는 공화정이 공동선 증진뿐만 아니라 개인의 자유도 보장하는 체제라 여겼다. 공화국의 안전은 개인의 사익을 포기할 때 확보된다.

마키아벨리 이후 공동선이나 공익보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우선시하는 자유주의적 사고가 등장한다. 마키아벨리와 함께 근대 정치사상의 시조라 불리는 홉스는 개인의 자기 보전을 우선시했다. 그에게 공동선은 개인의 자기 보전과 행복 추구 보장이다. 근대 이후 자유주의자들은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우선시하여 공익이나 공동선을 앞세우지 않았다. 그러나 공동선은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함으로 사익을 실현할 수 있는 도구라 여겼다. 이와 같이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전통에서만 공동선의 개념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개인주의적 사고를 가졌던 홉스도 공동선을 거론한다. 벤담은 공동체의 이익을 공동체 구성원의 이익의 합계로 봤다. 공리주의자인 그는 보편적 공동선을 추구하는 것이 어렵다면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통해서 양적 이익을 확보하려 했다. 근대 자유주의 계약론 역시 공익을 염두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사익은 공익을 해치지 않을 때에만 허용된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고전에서 근세까지 정치철학은 공익과 사익의 조화를 통하여 공동선을 달성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사익과 공익에 대한 근대 정치철학의 사고는 고대 도시국가의 고전적 모델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고전에서 근세까지의 공동선은 사익과 공익의 조화를 통해 달성하려 한다.

사회경제적 차원의 공동선을 살펴보자. 애덤 스미스는 개인이 도덕적 기반 위에 자신의 이익을 쫓는 경제 질서를 자본주의라 봤다. 자본주의는 사익과 공익이 조화를 이루면서 공동선이 증진됨으로 시작된다. 애덤 스미스는 인간은 이기적이지만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 존재라 이해했다. 그가 이해하는 인간은 본성적으로 경쟁과 분업 체제 속에서 공동체 전체의 이익이 더 많아진다고 믿고 그것에 따라 행동하는 존재이다. 시장은 분업의 결과를 교환하는 장소이며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공익과 사익이 조화되고 개인의 이기심을 공익으로 전환시키며 각 개인과 모두의 부를 증대시키는 곳이다. 반면 칼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사람에게 이익이 되는 공동선을 이루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봤다. 그는 공동선이 불가능한 이유로 자본의 사유화와 시장 질서를 지적한다. 시장에서 발생하는 이윤은 소수의 자본가들이 독점하기 때문에 사회 전체의 이익이 될 수 없으며 선과 정의 역시 지배 계급의 사익에 따라 좌우된다. 자본주의 국가는 지배 계급을 위한 분배 도구이기에 모든 사람에게 유익한 공동선은 불가능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은 사유화되어 경제 불평등은 피할 수 없으며 이로 인해 공동선은 달성될 수 없다. 그러므로 사적선을 배격하며 집단적 선을 우선시하는 공산주의만이 공동 이익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마르크스의 주장은 공동선이 개인의 이익을 강압적이며 일방적으로 배격한 공익이 아닌 사익과 공익의 자발적 협력에 의한 조화라는 고전적 전통의 길에서 벗어나는 오류가 있다. 자유주의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아무리 선한 의도로 시장에 개입하더라도 그것은 공동선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국가가 부자와 빈자의 생활수준의 평등을 위하여 개입하게 되면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희생됨으로 사회정의가 훼손된다고 봤다. 이렇듯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는 공동선을 추구하는 데에 있어서 방식뿐 아니라 내용면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그러나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모두가 헌법에 공동선을 추구하며 자신의 체제가 상대 체제보다 도덕적 정당성과 합리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결국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공산주의든 자유주의든 모두가 공동선을 추구한다고 말하며 자신들의 체계가 더 합법적이며 합리적인 공동선을 추구한다고 주장한다. 그만큼 공동선은 모든 체제를 넘어서는 상위 개념이라 정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