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 시대의 인문주의와 칼뱅
그리스어와 그리스 문화에 대한 풍부한 지식과 자료를 가진 많은 비잔틴 학자들이 콘스탄티노플의 함락으로 이탈리아로 피신해오게 되었다. 그들의 유입으로 그리스어는 유럽 전역에서 지식인의 일반적인 필수 구비사항이 되었으며 고대의 보화를 캐낼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되었다. 거기에 인쇄술의 발전은 인문주의 운동에 더욱 박차를 가하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인쇄는 필사본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고 가격은 높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저렴한 가격으로 책을 대량 생산할 수 있는 수단이 발명됨으로 책이 다양한 사람들에게 보급될 뿐만 아니라 다양한 필사본들을 조심스럽게 대조 연구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까지 할 수 없었던 다양한 학문적 시도가 가능한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탈리아의 르네상스는 여러 사상가들의 마음을 끌만한 새롭고 흥미진진한 무언가로 가득했다. 이탈리아에는 고대의 위대한 유산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보고 만질 수 있는 고대 로마의 기념비들과 건물들이 비록 폐허가 되었지만 전역에 흩어져 있었다. 고대 로마 문명의 관심은 폭발적으로 증가하였고 고전적인 로마 문화의 재생운동은 더욱더 활기를 띠게 되었다.
14세기 르네상스 시대에는 휴머니즘(영어의 humanism이나 독일어의 humanismus)이라는 말이 존재하지 않았다. 인문주의의 내용이라 할 수 있는 교양 학문을 나타내는 후마니타스(humanitas)라는 용어나 교양 학문을 가르치는 교사나 학생을 의미하는 라틴어 humanista(이탈리아어 umanista, 영어의 humanist)라는 단어는 당시에 쓰이고 있었다. 오늘날처럼 인문학적인 사조나 정신적인 태도를 의미하는 휴머니즘이라는 말은 1808년 독일에서 처음 쓰였다. 독일의 교육학자 니이타머(Friedrich.I. Niethammer)가 <현대 교수법 이론>에서 휴머니즘과 박애주의의 논쟁(Der Streit des Humanismus und Philanthrophismus in der theorie des Erziehungsunterricht unsere Zeit, Jena, 1808)을 출판하면서 중등학교에서 인성교육을 위한 고전교육 강화 필요성을 역설하기 위해 만든 새로운 용어가 휴머니즘이었다. 현재 우리가 인문주의로 번역하여 사용하는 르네상스 휴머니즘은 흔히 “이즘(ism)”이라는 말이 가지는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가지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당시의 인문주의는 고전학문의 교육과 긴밀한 관계가 있었다. 15세기 후반에 발생한 단어인 인문주의자(humanist)를 뜻하는 이탈리아어 umanista와 라틴어 humanista라는 말에서 알 수 있다. 이 단어는 당시 이탈리아 대학생들 사이에서 일반적으로 쓰이던 은어로 고전문학이나 고전어를 가르치는 중등학교 교사들이나 대학교수를 가리켰다. 16세기경 이 단어는 가르치는 사람뿐 아니라 고전 학문을 배우는 학생이나 연구자들에게도 확대되어 사용된다. 오늘날 인문학(humaniteis)으로 번역될 수 있는 인간성 혹은 인간다움을 교육하고 연구하는 학문을 가르치는 사람을 humanista 또는 umanista라고 불렀다. 곧 인문주의자는 인간성과 인간다움을 겸비한 교양 있고 학식 있는 사람을 의미했다.
고대에서 찬양받았던 후마니타스가 중세에는 인간보다 우월한 신성(divinatis)에 대비되는 개념이었기에 부정적으로 평가된다. 중세 기독교 관점에서 인간은 타락하기 쉬운 연약한 존재이기에 인간적인 것에 치중하면 할수록 신으로부터 더욱더 멀어지는 것을 뜻한다. 이처럼 고대에는 인간의 현세적인 것들은 공허한 것이 되어 버렸으므로 인문교육과 교양교육은 저평가되었다. 르네상스의 시대에 이러한 고대의 휴마니타스에 대한 개념이 부활되고 인문학이 활기를 띠게 되었다.